生의 記錄2007. 1. 22. 05:48

고등학생 시절, 동아리 선배의 아이디를 빌려서 나우누리에 종종 들어가곤 했다.
자주 갔던 게시판은 판타지 게시판(정확히 기억이 안난다)과 유머란.
나우누리 유머란에는 상당한 작가들이 짤막짤막한 유머가 아닌, 시리즈물로 연재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반응이 좋아 고정팬들이 많은 작가들도 있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시대의 흐름때문인지 통신의 대세는 BBS가 아닌 인터넷이 되었다. 정신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노는데 공부하는데 취해 고등학생 시절 좋아했던 작가들은 하나둘씩 잊고 살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느 게시판에서, 이라는 낯익은 닉네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시리즈물로 장편의 글이었는데, 상당히 재미있고 감동적이어서(감성을 자극하는)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옛 추억을 더듬어보니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내가 좋아했던 작가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게시판 뿐만 아니라, 카페를 만들어서 팬들과 교류하고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숫기가 없어 카페에서 활발히 활동하진 않았지만 게시판에 올라오는 연재글, 단편글들을 빼먹지 않고 보고 있었다.

그 후로 4년이 흘렀다.
시간 탓이라고 변명해보지만 어느덧 카페는 커녕, 그 카페가 있는 포탈사이트마저 발길을 끊게 되었다. 렇게 잊고 정신없이 살아오다가, 이 시간이 되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문득 그 작가가 생각나버렸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직도 글은 쓰는 걸까? 혹 카페가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궁금증에 그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카페를 찾아 들어가봤다.
다행이다.
여전히 카페는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고, 그 작가 역시 꾸준히 글을 쓰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감동적인 글도 많았지만 간간히 웃기는 글도 많았던 터라 지금 기분을 조율하는데엔 최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장편을 보긴 그렇고 단편이나 몇개 볼까.. 란 마음으로 단편 연재 게시판에서 최신작을 읽게 되었다.

내용은 떠났던 옛 애인에 대한 단상이었다. 어찌보면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주제. 글 쓰는 스타일은 여전하네.. 라고 읽었는데 한가지 눈에 띄는 단락이 있었다.


얼마 전 메신저에 접속하니..

오래전에 헤어졌던 그녀에게서 쪽지가 날라왔다.




-오빠. 많이 아프다면서.. 힘내.




병원에서 간암진단 받은 걸 카페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듣고 쪽지를 보낸 모양이였다.

뭐라고 답장을 보내고 싶었지만, 무슨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흔한 인사 한 마디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 픽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다 읽고난 뒤, 밑의 리플을 읽어보니.. 픽션이기는 커녕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쁘게 게시판을 뒤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올라온 글은 없었지만, 그나마 가장 최근 글부터 읽어보니...
힘든 투병 생활. 그리고 좌절. 기복이 있지만 점점 가라앉고 있는 문체...
좀 더 확인해보니, 작년 6월쯤에 간암 판정을 받은 모양이었다.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냉정하게 말하면 나랑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한 때 신경쓰며 읽었던 글을 쓰는 작가였지만 고작 3년, 4년만에 잊어버렸던 사람이다.
만일 몇 분 전에, 내가 찾아볼까.. 란 생각을 하다가 에이 귀찮아.. 하고 자버렸으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모르겠다. 새벽의 힘인지, 싸구려 동정심인지..
하지만 남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참 오랜만이구나란 생각이 든다.

지금의 상황을 안다고 해서, 예전과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
"아직 젊으시잖아요. 힘내세요." 라는 뻔한 싸구려 리플을 달지도 않을 것이고,
갑자기 신경써서 카페 활동도 하고, 병문안을 가거나 모임에 참여하지도 않을 것이다.
고등학생, 대학교 1학년 시절 했던 것처럼.. 틈틈이 들러 올라온 글을 읽을 것이다.

하지만,
새벽의 힘을 빌은 데다가 처음 알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해보지만,

죽지 마세요.

라고 조그맣게 말해버렸고, 이내 사라져버렸다.

Posted by 飛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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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년에, 초등학교, 중학교때 많이 도와주셨던 분에게 연락해보려고 연락처를 찾아봤을때 몇년전에 사고로 돌아가신걸 알고 엄청 슬펐던 때가 생각나네요 ...

    2007.01.22 07:52 [ ADDR : EDIT/ DEL : REPLY ]
    • 응. 이거랑 비슷한 걸수도 있겠다.
      좀 씁쓸하네..

      2007.01.22 21:16 [ ADDR : EDIT/ DEL ]
  2. 피앙

    그냥 좀 냉정하게 살면 ...

    2007.01.22 20:38 [ ADDR : EDIT/ DEL : REPLY ]
    • 냉정하게 살면 ..?
      그 뒤에 말 줄임표의 의미를 모르겠어;

      2007.01.22 21:17 [ ADDR : EDIT/ DEL ]
  3. 북하

    음? 휘긴경 아픈가? 흠.. 휘긴경이 아닌가?

    2007.01.23 12:07 [ ADDR : EDIT/ DEL : REPLY ]
  4.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지, 뭐가 이렇게 어렵고 복잡하냐구

    2013.07.12 01:34 [ ADDR : EDIT/ DEL : REPLY ]